신성력 3898년 3월 16일
날씨: 청명한 가운데 구름 조금.
'어제의 그 일'이 있고 나서 꼬박 하루를 두문불출했다. 왜냐고? 당연히 '그 녀석'과 마주치기 싫었으니까.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게 고백공격을 당했는데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왔으면 한다. 내가 거하게 밥 한끼 사줄 테니까! 하지만 나의 의지도 내 위장의 식사를 향한 욕구를 이기진 못 했다. 다들 식단 조절 등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배고픔'이란 존재는 천하장사도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잘 알 것이다. 너무 힘이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으니까.
어찌저찌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은 후 기숙사의 방문을 미세하게 열고 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요리조리 둘러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친구는 내 기숙사의 위치를 아직 알아차리지 못 한 듯 했다.
힘이 없어 터벅터벅 구내식당으로 걸어가며 이런저런 사색을 한다. 오늘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어제 먹지 못 한 단백질을 보충해야지, 아, 야채도 먹어서 식이섬유를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던데, 음료수는 무엇을 마실까, 와 같은 사소한 질문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달한 구내식당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식당에 그 아이가 앉아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헉, 어서 와요! 저도 방금 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라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에 어떻게 거절의 말을 전하며, '아 아니요, 전 당신 때문에 한 끼도 못 먹었는데요, 먹고 싶겠나요? 좀 생각을 하고 말을 하세요, 예의도 모르고 법도도 없는 이 같으니라구.' 라는 욕 아닌 욕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여린 나는 어쩔 수 없이 합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생전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린 건 오랜만이었다.
솔직한 내 심정을 털어놓자면 아진짜나는누구때문에밥도못먹고고생이란고생은다하고있는데편하게밥이넘어가냐...
아니다. 넘어가자.
아, 나의 꿈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어제 먹지 못 한 기름지고 육즙이 줄줄 흐르는 제국 동부 특유의 고기구이와 통통하고 아삭아삭한 채소들이 내 꿈 너머 저 멀리 날아간 것이다. 그 정도로, 그 사람과 있기 싫었다.
그나마 빨리 먹을 수 있는 야채 샐러드에 썰어놓은 고기 조각들을 잔뜩 챙겨 그가 있는 식탁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혹시나 그는 무엇을 먹나 싶어 그릇을 들여다 보니, 그의 접시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양의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세상에, 술로 호수를 만들고 만날 모험가들과 풍요로운 식사를 즐긴다는 비노그렌이라는 용도 저 정도는 먹지 않을 것이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이내 식욕이라는 힘 앞에 파스스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동그란 식탁에서 마주보고 앉아 어색한 식사를 시작했다. 아직 학교의 학생은 나와 이 알렉세이라는 친구 뿐이라 구내식당은 요상하리만치 조용한 기운만 감돌았다. 하지만, 신의 빛보다 강렬한 그의 발랄한 열기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재잘재잘...재잘재잘...
대답할 힘도 없이 조용히 샐러드를 깨작깨작 먹으며, 건성으로 대답해도 그 사람은 정성을 다해 대답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내 그릇은 비어갔다.
"오늘 대화 너무 즐거웠어요! 오늘 저녁은 모르겠지만, 내일 점심도 이 즈음에 드시면 같이 식사하시지 않을래요?"
네, 네.
먼저 일어나며 혼잣말 하듯 대답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일어나 그릇을 퇴식구에 가져다 놓고 천천히 나의 방으로 향했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런데, 일기를 쓰다보니 문득 가족과의 대화가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와 겹쳐보인다.
무한한 나의 질문에 돌아오던 짜증섞인 대답.
자그마한 애정을 간절히 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내게 날아오는 비수와 같은 냉랭한 대답.
누군가 나를 이렇게 잘 대했던 적이 있었나?
더 생각하면 우울해 질 듯 하여 오늘 일기는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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